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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 벅 이라는 독일의 평범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는 다녔지만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화가들은 정기적으로 성화를 한 장씩 그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그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그려 화실 한편에 두었습니다.
길을 가던 스텐 벅은 아리따운 집시 아가씨를 보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 그녀가 한쪽 구석에 세워진 스텐 벅의 성화를 보며 물었습니다.
"벌거벗긴체 십자가에 저토록 처참히 못 박힌 저 분은 큰 죄를 지은 모양이죠? 저렇게 혹독한 형벌을 받고 있으니 말이에요."
스텐 벅은 교회에서 들은 대로 설명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로운 사람입니다만 다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자 집시 아가씨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내 죄를 위해서도 저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예 그렇지요."
"그러면 선생님 죄도 저 분이 담당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아! 참 고마운 분이군요. 나는 그런 줄 몰랐어요. 저 분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까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실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부터 스텐 벅으 머릿속에서 그 여인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 분이 선생님의 죄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요?"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말이 괴로워서 그는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그림 밑에 이런 문장을 써 놓았습니다.
<내 너를 위해 몸 바쳐 피흘렸건만 너 나를 위해 무엇하느냐?>
그의 그림은 한 미술관에 걸리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젠도르프 백작이라는 사람이 미술관에 우연히 들렀다가 스텐 벅의 그림 앞에서 감전된 듯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림 밑에 쓰여진 구절이 그의 심장에 비수같이 꽂혔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 그의 무륲을 꿇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모라비안 형제단이라는 선교단체에 헌금을 하고 그 자신도 선교단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은 그 돈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어느 날 그들 중 두 명의 선교사가 아메리카에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다가 큰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울부짖으며 엄습한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모라비안 선교사 둘은 배의 갑판에 앉아 평안한 얼굴로 손을 붙잡고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존 웨슬리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모습에 찔림을 받아 하나님앞에 진정한 회심을 하게 되고 그도 역시 형제단의 단원이 되어 전 영국을 돌아다니며 영국의 부패와 죄를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영국 사람들이 웨슬레가 주도하느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집시 아가씨의 감격의 눈물이 화가 스텐 벅을 변화시켰고, 스텐 벅의 회개를 통해 진젠도르프 백작이 변화되었으며, 진젠도르프 백작이 변화되자 모라비안 형제단이 새롭게 되었고, 결국 모라비안 선교사들을 통해 웨슬레가 변화되었고, 웨슬레의 변화를 통해 전 영국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글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사과 속의 씨는 셀 수 있지만 씨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
오늘 우리가 가르치는 한 아이의 변화 얼마나 많은 파장을 가져올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 그 중심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한 영혼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씨름할 여러분을 위해 힘을 다해 외칩니다. 화이팅!
<울산대영교회 조운 담임목사님의 2010년 10월 3일 교육칼럼>
그 당시 화가들은 정기적으로 성화를 한 장씩 그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그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그려 화실 한편에 두었습니다.
길을 가던 스텐 벅은 아리따운 집시 아가씨를 보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 그녀가 한쪽 구석에 세워진 스텐 벅의 성화를 보며 물었습니다.
"벌거벗긴체 십자가에 저토록 처참히 못 박힌 저 분은 큰 죄를 지은 모양이죠? 저렇게 혹독한 형벌을 받고 있으니 말이에요."
스텐 벅은 교회에서 들은 대로 설명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로운 사람입니다만 다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자 집시 아가씨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내 죄를 위해서도 저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예 그렇지요."
"그러면 선생님 죄도 저 분이 담당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아! 참 고마운 분이군요. 나는 그런 줄 몰랐어요. 저 분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까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실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부터 스텐 벅으 머릿속에서 그 여인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 분이 선생님의 죄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요?"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말이 괴로워서 그는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그림 밑에 이런 문장을 써 놓았습니다.
<내 너를 위해 몸 바쳐 피흘렸건만 너 나를 위해 무엇하느냐?>
그의 그림은 한 미술관에 걸리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젠도르프 백작이라는 사람이 미술관에 우연히 들렀다가 스텐 벅의 그림 앞에서 감전된 듯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림 밑에 쓰여진 구절이 그의 심장에 비수같이 꽂혔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 그의 무륲을 꿇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모라비안 형제단이라는 선교단체에 헌금을 하고 그 자신도 선교단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은 그 돈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어느 날 그들 중 두 명의 선교사가 아메리카에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다가 큰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울부짖으며 엄습한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모라비안 선교사 둘은 배의 갑판에 앉아 평안한 얼굴로 손을 붙잡고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존 웨슬리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모습에 찔림을 받아 하나님앞에 진정한 회심을 하게 되고 그도 역시 형제단의 단원이 되어 전 영국을 돌아다니며 영국의 부패와 죄를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영국 사람들이 웨슬레가 주도하느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집시 아가씨의 감격의 눈물이 화가 스텐 벅을 변화시켰고, 스텐 벅의 회개를 통해 진젠도르프 백작이 변화되었으며, 진젠도르프 백작이 변화되자 모라비안 형제단이 새롭게 되었고, 결국 모라비안 선교사들을 통해 웨슬레가 변화되었고, 웨슬레의 변화를 통해 전 영국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글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사과 속의 씨는 셀 수 있지만 씨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
오늘 우리가 가르치는 한 아이의 변화 얼마나 많은 파장을 가져올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 그 중심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한 영혼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씨름할 여러분을 위해 힘을 다해 외칩니다. 화이팅!
<울산대영교회 조운 담임목사님의 2010년 10월 3일 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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