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독서는 체험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참으로 정밀히 살피고 밝게 분변하여 심신으로 체득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분량의 책을 암송한다 한들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잇겠는가. 문청공(文淸公) 설선(薛瑄)*이 말하기를, '독서를 함에 있어서 착실히 체인(體認)*하면 도리(道理)가 약동하는 듯이 마음과 눈 사이에 들어와 문자와 언어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하고, 또 말하기를, '독서를 오래도록 하여 깨달은 글 속의 이치가 자신의 몸속의 이치와 하나하나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참으로 터득(攄得)*하는 것이 있게 된다.' 하였다. 나는 일찍부터 이 말을 사랑하였으니, 진실로 참다운 마음과 참다운 학문이 없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 "일득록"에 나타난 독서의 특성
독서, 즉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글 전체의 의미를 구성해 가는 과정이다. 정조는 "일득록"에서 이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나아가 정조는 이 글에서 독서가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여 '도'에 도달하는 경지까지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일득록"의 편찬 의도
"일득록"은 신하들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정조 7년(1783)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의 건의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사관(史官)의 기록과는 별도로 규장각 신하들이 평소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연말에 그 기록을 모으고 편집하여 규장각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정조는 서(序)에서 이 책을 편집하게 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반성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며, 또한 그 기록을 통해 신료들의 문장과 논의도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만약 지나치게 좋은 점만 강조하여 포장하려 한다면, 그저 덕을 칭송하는 하나의 글이 될 뿐이니, 어찌 내가 이 책을 편집하게 한 본뜻을 어긴 정도일 뿐이겠으며, 뒷날 이 책을 보는 이들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다 할 것이며, 규장각 신료들을 또 어떻다 하겠는가? 이러한 의미를 규장각 신하들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 설선 :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
* 체인 : 마음속으로 깊이 인정함.
* 터득 :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알아냄.
* 고질화 : 오래되어 바로잡기 어렵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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