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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혼자 여행을 한다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여행이라고 해 봐야 수학여행 정도이겠지요.
기억속에 아버지의 계중 계원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대형 천막을 치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1996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20년이 넘었네요.
그 동안 직장도 몇번 옳겨다니기도 했지만, IMF때 잠시 쉬었고 업종을 바꾸면서 3개월 쉰걸 제외하고는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잠시 쉬는 시기에도 혼자 여행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와서 갑자기 혼자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출사나 자여사등에 올려진 글들을 보면 국토종주를 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서 읽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의 경험담도 많고, 이젠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저도 시간만 낼 수 있다면 한번쯤 도전해 볼 만 할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죠.
드디어 최근 여러가지 일도 있고 해서, 생각도 좀 정리하며 추스릴 겸 여행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국토종주를 하는 것이었으나, 계획을 들어보던 아내가 제주도가 좀 더 구경할 거리들이 많을테니 제주도로 가 보는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 주었네요...
계획을 바꾸어서 제주도를 가는 것으로 계획을 급선회 했습니다.
제주도에도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지만, 저는 제 몸에 맞는 제 자전거를 가져가기로 합니다.
울산에서 제주도까지 자전거를 가져가는 방법은 김해공항에 가서 비행기에 싣고 가는 방법과, 여수항으로 가서 배에 싣고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여수의 지인을 만날 겸 배에 싣고 가기로 합니다.
하루 전날 여수에 도착하여 지인을 만나뵙고, 1박한 후 아침 일찍 여수 엑스포항에 도착했습니다.
발권을 하고 자전거를 배에 실으면 되는데, 저는 처음이라 싣지도 않고 저러고 있었더니 근처에서 차를 인도해 주고 있던 직원이 와서 배 한쪽편에 실으라고 알려주네요.
저 열린곳으로 들어가서 왼쪽편에 보니 앞서 몇몇분들이 이미 자전거를 세워두었더군요.
거기에 같이 묶어두었습니다.(알아서 묶어줍니다.)
여수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갑니다.
이렇게 큰 배는 처음 타 보는데,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
배가 크다보니 출렁거리는 건 전혀 없더군요. 배멀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이렇게 생긴 배 입니다. 크긴 해도 제대로 된 여객선에 비하면 작습니다.
한컷 날려봅니다.
배 내부는 그럭저럭입니다.
식당과 매점, 조그만한 커피샵이 있습니다. 별로 기대할 바는 못됩니다.
제주도까지는 5시간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만, 실제 6시간 걸렸습니다. 아마도 바람의 방향이라던지 파도 등의 영향을 받아서 시간이 지연되기도 하나봅니다.
=====
제주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확~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몇방울 떨어지더니, 좀 있으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여수에서 도착하는 선박은 4부두 앞에서 내려줍니다. 자전거로 부두 정문을 통과한 후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빗방울이 어떻게 될지를 지켜봅니다.
함께 비를 피하던 일가족은 라이딩을 포기하고 용달차 업체에 전화를 하네요. 아이들이 어려보이던데, 굳이 우중라이딩을 강행하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보였습니다.
저는 여행하며 비 좀 맞는건 당연하다 생각했으므로 시간 까먹고 있을 필요 없이 주섬주섬 우중라이딩을 준비하여 출발합니다.
다른 분들 후기에서 가끔 보던 출렁거리는 다리입니다.
다른 분들은 주로 라이딩 막바지에 저 장면이 등장하던데, 제주항에서 출발한 저는 처음부터 저 장소를 지나가게 되더군요.
이곳을 지나서 조금만 가면 용두암 인증소가 나옵니다.
저는 가민 520에 라이딩 코스와 인증소 위치를 모두 입력해서 출발했으므로 인증소를 놓칠 염려는 없었습니다만, 용두암인증소와 유인인증센터는 라이딩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안내 팻말을 확인하지 않거나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면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비는 오락 가락 하며 많이 내리진 않았습니다만 남서풍이 매우 강하게 불어서 자전거가 몇 번이나 휘청거리더군요. 바람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출발하면 많이 힘들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서쪽을 향해 출발했으므로 가는 내내 맞바람과 측풍에 휘청거려야 했습니다.
첫째날 목표 거리가 63키로 정도인데,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60키로 정도이면 평속 15키로를 예상해도 4시간이면 충분한, 반나절이면 쉬어가며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근데, 배가 지연되어 조금 늦게 도착한 데다가 몰아치는 맞바람의 위력은 도저히 저녁식사시간 전에 목표 거리를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슬슬 힘도 떨어지는 것 같고... 달려가다가 식사할 만한 곳이 보이기에 잠시 들어가서 식사를 합니다.
식당 주인이 추천해 준 제주 흑되지 5겹살 스테이크인데......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별로이더군요.
제가 고기종류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분들에게는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숙소 예정지까지 십여 키로 남아있는데, 식당 주인아저씨는 날씨가 흐려서 금방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불어서 위험하니 숙소를 예약한 게 아니라면 가까운 곳에서 쉬어가라고 만류하네요...
근데, 제가 또 한 고집 합니다.
첫날이라 일부러 거리를 길게 잡지도 않았는데 60키로도 안가서 숙소에 들어간다는 건 제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야간라이딩 준비를 마친 후 라이딩을 시작합니다만... 얼마 안가서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며 얼굴이 따갑도록 내리치고, 강한 빗줄기 때문에 고글을 쓰고 있는데도 눈으로 빗물이 튀어 들어와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길은 점점 외진곳으로 변해가며 주위에 인가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기만 합니다.
너무 캄캄한 곳을 휘청거릴만큼 불어치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달려가는데, 도로 한켠에서 라이딩을 포기하고 용달차를 부르고 있는 어느 그룹도 보이더군요.
가민520에 코스를 넣어온 덕분에 아무리 어두워도 길을 놓치지는 않았습니다만, 캄캄해서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닷가를 따라 가다보니 어디선가 휙~ 휙~ 하는 소리도 들리더군요.(무섭게시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둠속에 뭔가 하얀게 휙~ 움직이는게 보입니다. 다가가며 보니 거대한 풍력발전기 더군요. 캄캄한 곳에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걸 보니 좀 무섭습니다. 얼른 통과하고 싶어서 속도를 올려봅니다만 맞바람 때문에 속도도 잘 올라가지 않습니다.......
계속 속도계를 보며 '이제 5키로 남았어', '4키로만 더 가면 되.', '3키로. 힘내자.', '2키로만 더...' 이렇게 외치며 달렸네요.
2키로 정도 남은 시점에 저와 다른 길에서 나타나서 제 앞 100미터 정도를 앞서가는 그룹이 보입니다. 아... 저 그룹은 비바람을 피해서 동선을 줄일 목적으로 지름길로 달려왔구나 싶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외롭지는 않겠다 싶어서 그 그룹을 뒤쫓습니다만, 그 그룹도 최선을 다하는 모양인지 거리가 잘 좁혀지지 않습니다.
비를 쫄딱 맞고 달려가고 있는데 옆에서 달리던 차가 저와 속도를 맞추면서 창문을 내리고는 혹시 숙소 찾고 계시나고 물어봐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서글프게 비바람 맞고 있는데 물어봐주니 고맙더군요. 숙소까지 1.5키로 정도 남은 시점이라, 예약한 숙소가 있다고 말씀드리고는... 비바람이 너무 거세서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
목적지까지 1키로가 남은 시점에 경찰차가 제 옆을 지나가며 속도를 살짝 늦추는가 싶더니, 이내 앞의 그룹을 쫒아가서 외부스피커로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지나갑니다. 그러자 그 그룹이 속도가 조금 느려지더군요. 저는 목적한 숙소 근처까지 왔으므로 500미터 남은 지점에서 갈림길로 접어들었습니다만, 접어들면서 보니 앞서 가는 그룹은 처음 나타난 가게 앞에 잠시 멈추더군요.
아마도 그 경찰차는 저를 앞서가는 그룹에서 낙오한 라이더로 보고 뒤에 한명 흘렀다고 이야기해주고 가는 듯 싶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30대 여자분)이 걱정을 가득 하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냥 오다가 가까운데 아무데나 들어가시지, 이렇게 날씨가 안좋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고... 고생하셨다는 말을 들으며 젖은 옷을 벗어놓고 씻고 나오니 따뜻한 커피와 맛있는 머핀을 대접해 주시더군요. 게다가 젖은 옷도 사장님 빨래들과 함께 말려주시고... 잠자러 가기 전에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내일이 걱정된다면서 뜨거운 쌍화차도 한병 내어 오셨습니다...
자전거는 비 맞지 않도록 건물 외부 화장실에 넣어주셨구요.
비를 쫄딱 맞고 갔는데도 그렇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2인실을 혼자 쓰는 조건으로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싼 4만원이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직접 내린 커피에 빵 등도 대접하며, 저는 늦게 갔지만 먼저 도착한 게스트들을 데리고 식사하러 가자며 나가서 저녁식사도 대접했다고 하더군요. 즉, 게스트를 그냥 게스트로 대하지 않고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으로 대하는 그런 정감 있는 분이었습니다.
다음번에 또 제주도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
자전거를 가지고 제주도를 여행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비싼(!)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 분들 중에 자전거를 방 안까지 가지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전거에 그닥 관심 없는 분들은 겉으로 봐서는 자전거가 비싼건지 아닌지 구별이 안되며, 자전거를 가지고 방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자전거를 방에 가지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 이게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분들께 억지로 자전거를 방에 가지고 들어가야겠다고 우기면 당연히 대화가 안될 뿐더러 심할 경우에는 입실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래는 제가 대화한 내용입니다.
사장님: 자전거는 저기 담 옆에 안넘어지게 잘 세워두시면 되요.
나: 혹시, 저기에 둬도 손 타거나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사장님은 제 자전거가 고가라는 것을 얼핏 이해함.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용두암에서 자전거 빌려온 사람들은 아무데나 대충 둔다고 합니다.)
사장님: 그럼, 저쪽 건물 사이에 안보이는 곳에 두면 될까요? (타협을 시도함)
나: 아! 그럼 되겠네요. (흔쾌히 받아들이며, 건물쪽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갑니다.)
사장님: 이쪽 건물에 딸린 화장실(세면실)이 있는데, 실내에도 화장실이 있어서 잘 안 써요. 괜찮으시면 여기 넣어두는건 어때요? (쉽게 협조하는 제 자세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건물 안에 넣어도 된다고 합니다.)
나: 아! 저야 감사하지요. 신경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며 자전거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이긴 해도 밤새 비를 피할 수 있는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가 밖에 새워둘 수 없다고 우겼으면... 과연 실내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말이란 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을수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속담인데, 다니다보면... 또 글을 읽다 보면 너무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더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친절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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