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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것과 책임감이라... 언뜻 보면 서로 관련 없는 단어 처럼 보인다.
책임감이라...
뭔가 책임을 지고 일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뭔가를 한다면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머릿속에) 한가득 담아두고 있게 된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라면,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점검하며 진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동호회의 리더를 맡고 있다면, 그 동호회가 원만하게 잘 운영되게 하기 위하여 모임의 주제, 운영과정, 제정, 회원들의 상태 등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 생각한다. 그러기에 어떤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어떤 일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 중압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말도 된다.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직원에게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닥칠때에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 실수가 발생하고, 그것이 잦아지면 결국 업무처리 능력을 의심받게 된다.
가정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주부라고 하여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깨워야 하고, 밥도 지어야 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생각하여 요리를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는 뒷전이 되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한 마디로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다 못해 터질 지경이 된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은 엄청난 짐이다.
직장에서 설계부서 팀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다.
자전거 동호회 울산 운영진 역할을 맡았었다.
독서모임 공동리더 역할을 맡았었다.
어느 게임의 군주 역할을 맡았었다...
나는 원래 이거 저거 나서서 맡아서 리더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군대 있을때도 선임분대장(내무반장)에 지명되었었는데... 누군가 보기에 나에게 맡겨두면 잘 할것 처럼 보였나 보다. 이러다보니 각각의 맡은 자리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한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일이 바빠지고 체력이 떨어질수록 막아내기 벅찬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했고...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직장에서의 팀 리더 역할은 여전히 충실해야 한다.
자전거 동호회 울산 운영진 역할을 사퇴했다. 울산 인근의 누군가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독서모임은 탈퇴했다. 새로 들어온 맴버 중 성실해 보이던 어떤 분이 공동리더에 합류했다.
게임의 군주 자리도 겨우 겨우 후임자를 구해 넘겨주었다.
내가 하던 일을 후임자가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뒤따르긴 하지만... 이제 내려놓아야 하고, 마음에서 비워야 한다. 비우기 힘들더라도 온전히 비울 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우다보면 평화로움과 함께 어느 순간 마음의 공허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공허함을 잘 다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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